889. Hi-Fi 오디오 라이프 디자인 - 기디언 슈워츠 (2024)

어쩌면 가장 먼저 읽었어야 했던 책이지만

좋은 책은 기대가 되는 만큼

마지막에 읽어 내려간 오디오 서적이다.

책은 오디오의 시작부터 하이엔드의 등장과

최근에 나온 제품군들까지 오디오 백과사전처럼

각각의 브랜드의 유례와 특징

그리고 배경지식등을 담고 있다

나름 몇달동안 많은 오디오 관련 브랜드들과

앰프와 케이블 스피커 등등

많은 회사의 제품들은 나름 살펴봤지만

책을 보니 여전히 낯선 브랜드들이 많았다.

아무튼 내용도 내용이지만

많은 면을 할여한

오디오 모델들과 스피커의 이미지들만으로도

충분히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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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 HI-FI는 원음에 최대한 가깝게 소리를 재현하는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고충실도)'의 준말로, 하이파이를 구현하기 위한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과 음원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개념이다.

뉴트로 열풍으로 바이닐 문화가 부흥하고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술을 접목해

최적의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게 된 지금,

진정한 하이파이의 시대가 도래했다.

스티브 잡스의 캘리포니아 자택에 놓여 있는 어쿠스탯의 오디오 시스템에서 출발한

저자의 시선은 토머스 에디슨의 포노그래프부터 턴테이블, 릴투릴 테이프 레코더,

진공관 앰프, 혼 스피커 등을 경유해 디지털 시대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까지 훑어 내려간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에 이르러 잡스의 역작 아이팟이 출현하며

음질과 음색의 영향력이 사그라드는가 싶었으나,

새 시대의 기술은 이제껏 경험할 수 없었던 궁극의 음향에 도달하며

차원이 다른 오디오파일 문화를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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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포노그래프는 오디오 순수주의자가 꿈꿔 온 이상적인 기기였다.

녹음과 재생이 이렇게 밀접하게 결합된 기기는 없었다.

그의 포노그래프는 진동판 diaphagm에 부착된 바늘이

양철 실린더(이후 왁스 실린더로 교체)에 소리골을 새기도록 만들어졌다.

음이 진동판을 진동시키는 동시에 바늘이 실린더에 진동을 입력하며

녹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역순으로 거친다.

실린더가 회전함에 따라 실린더 진동이 다시 진동판을 증폭시켜 소리를 낸다.

이 재생 방식은 원래의 녹음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analogous.

우리가 LP를 언급할 때 쓰는 단어 '아날로그analog'는 여기서 유래했다.

이런 순수 기계식 포노그래프는 '어쿠스틱 포노그래프acoustic phonograph라 불리는데,

이는 이후 소개된 전기식 포노그래프alectrical phonograph'와 구분된다.

에디슨의 포노그래프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음악은 단 2분 동안만 재 생 가능했고, 실린더의 홈은 쉬이 닳아 버렸다.

무엇보다 실린더를 복제할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아티스트는 실린더 제작 시 판매할 수량만큼 연주를 반복해야 했다.

회사 경영권을 확고하게 움켜쥔 에디슨은

주변에서 제기하는 포노그래프의 문제점에 무관심했다.

포노그래프의 최초 발명 이후 나타난 변화는 모두 시장 압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단점 그대로인 포노그래프를 끝까지 고집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내 포노그래프에 싫증을 느꼈고, 우수한 제품을 갈망하고 있었다.

포노그래프보다 진화한 제품을 기대했던 당시 소비자들은 고급화된 오디오가 아닌

음질의 향상을 갈망했다.

독일계 이민자 에밀 베를리너Emile Beriner는 그라모폰을 선보여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켰다.

포노그래프 탄생 10년 후 베를리너는 에디슨의 불완전한 실린더 방식을 없애고

이를 평평한 디스크로 대체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따라서 그라모폰은 보다 효율적으로 음악을 양산했고,

20세기 음액 배급 모델의 기반을 완성했다.

스위스의 토렌스 10010는 개량한 포노 그래프와 그라모폰을 출시했다.

스위스 특유의 초정밀 가공 기술, 정교하고 우아한 기능주의 아래 성장한 토랜스는

미래에 태동할 걸출한 자국의 오디오 메이커,

더 나아가 전 세계 오디오 메이커에게 필요한 철학적 토대를 완성했다.

1920년대 후반 토렌스가 출시한 소나타 Sonata와 엑셀다EXcolda는

휴대용 그라모폰이다.

오디오 시스템을 콤팩트 패키지로 만들어 어디서든 사용 가능하게 하는 발상은

결과적으로 1970년대 나카미치 Nakamichi 550, 350 포터블 카세트 레코더와 같은

하이엔드 기기는 물론 1979년 소니Sony의 워크맨Walkman,

2001년 애플Apple의 아이팟iPod에 영감을 주었다.

이후 토렌스는 하이엔드 오디오 신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행보를 보여 주는 메이커로 성장한다.

오디오 산업은 다른 지역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1925년 스칸디나 비아에는 디자인에 날카로운 심미안을 지닌 두 명의 덴마크인 엔지니어,

페테 르 뱅Peter Bang과 스벤 올룹슨Svend olutsen이 있었다.

그들은 올룹슨의 공방에서 라디오를 설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 누추한 시작은 오늘날 뱅앤올룹 슨Bang&oluisen(이하 B&O)의 포트폴리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다.

1947년 B&O는 마그네틱 와이어 레코더인 시코드Seacord 85U를 출시했다.

1960년대 에는 산업 디자인계 아이콘인

야콥 옌센Jacob Jensen과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를 고용했다.

이후 디자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B&O는

이후에도 세련된 미감을 고수했다.

B&O의 탁월한 엔지니어링은 듀런트Duelund Conerent Audio,

다인오디오Dynaudio, 일렉트로콤파니에Electrocompaniet,

그래디 언트Gradient, 그리폰Gryphon, 탠드버그Tandberg,

비투스 오디오Vitus Audio와 같은 북유럽 오디오 메이커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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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는 탄탄한 디자인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했으나,

오늘날 이들의 초기 제품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특히 하이엔드 오디오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시기에 제조된 포노그래프, 그라모폰, 라디오 콘솔 등 대부분 마찬가지다.

1930년 대 발명된 제품 중에서는 단 하나만을 예외로 친다.

바로 독일의 젤라톤Zellaton 스피커다. 이 제품은 지금도 초기 모델 그대로 생산되고 있다.

발명가 에밀 포트추스 Emi Podszus 박사의 개발 의도는

1932년 취득한 특허 첫 단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발명품은 소리 재생 장치(스피커)의 음질 개선에 목적을 두며,

특히 스피 커의 진동판은 재생된 음파와 부합되어 진동할 수 있도록 정확히 제어되어야 한다.

스피커는 진동판의 자연스러운 진동을 점검하고 부분적으로 바람 직한 진동을 강화하는 장치로 음질을 개선할 수 있다.

포트추스 박사의 유닛에는 매우 가벼운 스피커 관이 포함된다.

그는 건고한 편을 만들기 위해 경량 발포 고무 소재를 열로 구운 다음,

수작업으로 마이크로 포일을 덧입혔다.

이 공정은 오늘날 현대화되었지만 기본적인 생산 방식은 과거와 동일하다.

이 기술을 일컬어 '고유 진동natura vibration 이라 부른다.

고유 진동 기술은 불 필요한 분할 진동으로 음이 찌그러지는 현상을 극소화했기 때문에

훨씬 자연스러운 음을 재생할 수 있다. 이는 젤라톤 스피커가 간직한 오랜 미덕이다.

1940년대 말에 이르러 오디오 시장의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이 시기 우아한 아르데코 사조의 영향을 받은 오디오들이 시장에 자리 잡았다.

특히 노련한 미국 오디오 제조사들이 출시한 라디오 초기작들은

완벽한 장인 정신과 독특한 소재로 제작되었다.

정교하게 제작된 아르데코 스타일과 대척점에 위치한 오디오도 점차 인기를 누렸다.

극장과 PA• 시스템에 사용된 거대한 혼 스피커nom speaker가 그것이다.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과 독일의 클랑필름Klangfim은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혼 스피커의 장점은 효율성으로, 저출력 삼극관 앰프로도 멋진 사운드를 낸다는 데 있다.

이들 제품은 오늘날 오디오 컬렉터 시장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콤팩트하고 우아한 스타일의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웨스턴 일렉트릭 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혼 스피커도 인기가 높다.

1950년대는 사운드와 디자인 모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오디오의 절정기였다.

포노 그래프부터 그라모폰까지 혹은 테아트로폰부터 라디오까지, 세상은

끊임없이 오디오의 진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이파이가 세상에 움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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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오디오 산업이 유토피아

# 충실한 재생에 대한 진실

모든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의 기본 목적은 음악의 충실한 재생이다.

녹음을 통 해 전달한 아티스트의 의도가 최대한 정확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보존되어야 한다.

이 신념은 공고한 오디오 철학이 되었다.

이후 수많은 오디오 디자인 엔지니어들 이 더 섬세하고 미묘한 오디오 철학에 도전했다.

이들(그리고 오디오 애호가)에게 하이엔드 오디오의 목적은

연주의 충실한 재현만이 아니라 음악을 보다

다정하고 세심하고 우아하게 재창조하는 데 있다.

즉, 아티스트의 본래 의도에 질감과 포만 감을 더하는 윤색의 과정이 이상적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종종 아티스트와 스튜디 오 종사자에게 이질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이 재생법이 충실한 재생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오디오 애호가들은

오랜 시간 논쟁해 왔다. 다음 챕터에서는 오디오 세계의 수많은 접근법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다양성은 예술적 영역에서만 유효하다.

그 안에서는 오디오의 음이 선형적이고 착색되었는지보다는

오디오 디자이너의 의도,

즉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를 얼마나 충실하게 담아냈는 지가 중요하다.

# 사운드 의 의미

오디오 설계에는 수많은 접근 방식이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고충실도를 보편적으로 달성하려면 선명도가 가장 중요하다.

가청 범위를 재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리'는 무엇일까?

간단히 이야기해 소리는 음조pitch, 음색 tone, 음량volum 으로 그 구성 요소가 나뉜다.

음조를 고려할 때 우리는 음표나 음색이 얼마나 높고 낮은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음표는 특정 시간 동안 공기 중에서 진동하며 음파를 발생시키는 음의 길이를 의미한다.

음표의 진동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주기cycle가 만들어진다.

이 주기가 바로 음표의 음조 혹은 음색이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의 높은 음표는 첼로의 낮은 음표보다 더 빠른 진동 주기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음을 들을 때 우리의 귀는 높고 낮은 음조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다.

음표에 의해 생성되는 초당 진동 주기의 수는 주파수라 부르며,

초당 1주기와 같은 주파수 단위를 가리켜 헤르츠Herz라 한다.

이는 1887년 첫 무선 주파수 전송 실험을 담당한 인물인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Heirich Herz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낮은 주파수를 가진 음은 낮은 음조를, 높은 주파수를 가진 음은 높은 음조를 띤다.

일반적으로 인 간의 귀는 16헤르츠부터 2만 헤르츠까지 들을 수 있으며

이를 가청 주파수라 한다.

이 범위는 개인의 연령, 또는 저마다 축적된 청각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큰 소음에 꾸준히 노출되면 청력이 손상될 수 있다.

하지만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로 연주되는 음은 같은 음표라 하더라도 무척 다르게 들린다.

더 나아가 같은 악기라도 야마하Yamaha 피아노로 연주되는 음은

파지올리Fazioli의 그것과는 다르게 들린다.

이러한 엄격한 음조의 차이를 음색이라 하는데,

이는 유사한 용어인 컬러color°, 팀버timbre, 하모닉스harmonics 를 한데 포괄하는 표현이다. 이 요소들은 최고의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구현된다.

음량 또는 음의 크기는 음파의 진폭에 따라 정해진다.

진폭은 기본적으로 기 준 위치에서 얼마나 높은 지점까지 도달하는지의 차이를 측정한 값으로, 제트 엔진처럼 음량이 큰 음은 산들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처럼

낮은 음보다 훨씬 높은 진폭을 가진다.

# 턴테이블에 부상

테이프 레코더와 함께 두 가지 기술 포맷이 10년간의 하이파이 신을 지배했다.

바로 턴테이블과 튜너tunor다.

1950년대 초반에 음반 품질이 대폭 향상됐는데,

셀락sholiac(동물성 천연수지의 일종)같이 무겁고 잡음이 많았던 78회전 디스크보다

한층 고요한 소재인 바이닐vinyi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1948년 컬럼비아레코드 는

12인치 33½회전 마이크로그루브mlicrogroovo* 바이닐 음반을 발표했다.

이것이 현재의 LPLong Play다.

RCA는 1년 후 7인치 45회전 음반을 발표했다.

45회 전 음반은 이전의 78회전보다 훨씬 얇지만 내구성이 개선되었고

음의 다이내믹 레인지 또한 향상되었다.

마침 이 시기에는 재즈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들이 쏟아졌다.

새로운 음반 기술이 등장하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시기는 없었다.

1950년대 후반 이전의 음반은

한 개의 스피커로만 재생하는 모노포닉monophonio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스테레오 녹음이 등장한다.

1950년대는 재즈 신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이다.

당시 재즈 아티스트들의 재능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이 재즈 천재들은 높은 수준의 공학 기술이 담긴 45회전 LP 음반이 없었다면

이내 잊혔을 것이다.

1950년대 레코딩 기술자 중 가장 빼어난 이로 하나같이

루디 반 겔더Rudy Van Goder를 꼽는다.

그의 생생하면 서도 따뜻한 음색은 소위 '반 더 사운드Van Gelder sound'

'블루 노트 사운드Blue Not e sound'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고,

텔로니어스 멍크Thelonious Monk의 《멍크 Monk》(1954),

마일즈 데이비스Mlles Davis의 《마일즈Mlles》(1955),

존 콜트레인 John cotrane의 《블루 트레인티ue Train》(1958),

그리고 몇 년 뒤 발매된 <러브 슈 프림A Love Supremo》,

허비 행콕Horble Hanco*ck의 《매이든 보야지Maiden Voyago》

(1965) 등 전설적인 재즈 앨범을 탄생시켰다.

1950년대 음악과 음반 산업의 발전은 턴테이블의 흥행을 견인한다.

당시 턴테이블은 디자인과 기술 모두에서 녹음 스튜디오의 내구성을

고스란히 가져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턴테이블에 가장 널리 쓰이던 기술은

고무 휠로 모터와 회전 플래터를 작동 하는 아이틀러드라이브(diardrtvo 시스템이었다.

# 라디오 튜너 와 리시버

1950년대까지 광범위한 팝, 클래식, 재즈 음악이 방송국을 장악했다.

AM 방송국 과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된 FM 방송국은

음악적으로 우수한 품질을 획득했다.

주파수가 42~50메가헤르츠에서 88~108메가헤르츠로 확장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향상된 방송 품질로 시장에서는 한층 더 우수한 튜너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이로써 흥미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 스피커

1950년대까지 뛰어난 스피커 기술은 극장 혼 스피커에 머물러 있었다.

1950년 대부터 하이파이 시스템이 거실을 장악하기 시작했지만

집 안에 거대한 극장 혼 스피커가 아름답게 놓일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스테레오 아니, 모노라 할지 라도 말이다.

RCA, 텔레푼켄Telefunken, 그룬딕Grundig, 제니스Zenith 등은

콘솔형 오디오 디자인의 모범 답안을 제시했지만 하이엔드 오디오는 분리형 시스템을 주장했다.

1950년대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의 목표는 단품 기기의 성장과 함께

소형 스피커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알텍 랜싱Altec Lancing, 젠센Jensen, 로더 Lowther, 탄노이 Tannoy와 같은

주요 스피커 제조사는 큰 혼 스피커 설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혼이 탁월한 지점은 고능률이다.

혼 스피커로 큰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매우 작은 앰프 신호만 있어도 된다.

당시 스피커 유닛은 효율이 떨어져 거대한 흔 로드 캐비닛을 통한 증폭에 의존해야 했다.

혼 스피커는 1990년대에 다시 부활해

현재 하이엔드 오디오의 중요한 세그먼트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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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관능적인 스테레오

1960년대가 도래했다. 틈새 문화로 향유됐던 하이엔드 오디오는 이제 점점 주류 로 성장한다.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오디오 기기는 널리 보급되었다.

10대들은 최신 히트곡을 공유하기 위해,

그들 부모는 칵테일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음악을 틀었다.

수많은 가정의 거실에 오디오가 자리 잡게 되면서

다소 보수적이었던 하이엔드 오디오의 디자인 경향은 과거와 달리 급진적으로 변화했다.

당시 우주 경쟁은 미래주의와 공상 과학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고,

이는 곧 하이파이 문화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당시 영화와 문학 작품 속에서 오디오는 성공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했으며,

특히나 젊고 부유한 싱글맨과 잘 어울리는 물건으로 여겨졌다.

'오디오 싱글맨' 유행에 동참한 것은

1960년대의 섹스 인플루언서 『플레이보이 Playboy, 매거진이었다.

플레이보이는 지면에서 오디오 리뷰를 제공하고 신제품 을 강조했는데,

이는 오디오를 기술적으로 접근했던 기존 잡지와는 다른 관점이었다.

이 시기 오디오는 바 캐비닛*과 함께 싱글맨 아파트의 필수품이 되었다.

# 솔리드 스테이트 의 출연

1950년대 하이엔드 절대 왕정에서

1960년대 대량 생산 시대로 이전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은 솔리드 스테이트 회로,

즉 반도체의 등장이었다.

고체 상태에서 모든 전자 활동을 보존하고 억제하는 일을 일컬어 솔리드 스테이트라 한다.

솔리드 스테이트 등장 이전 제조사는 진공관에 의존했고,

이는 전적으로 전압으로 구동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변압기가 필요하다.

반면 솔리드 스테이트는 전류에 의해 구동되고 출력 변압기가 필요하지 않다.

1960년대 솔리드 스테이트에 도전한 초기 제조사들은 예외 없이

진공관 앰프의 압도적인 음질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솔리드 스테이트의 음질이 점점 성장하며 마침내 경쟁의 장은 수평선을 이룬다.

1970 년대 이후 솔리드 스테이트는 진공관이

다다르지 못했던 영역까지 도달하는데 성 공했다.

수년간 진공관과 솔리드 스테이트라는 두 학파는

디자인과 방법론을 경쟁 하며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솔리드 스테이트는 진공관보다 낮은 열 배출로 높은 편의성을 제공하고

유지 보수가 쉬웠기 때문에 실용성이 좋았다.

이러한 실용성과 편의성은 많은 소비자를 순수 하이엔드 오디오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했다. 1960년대부터 오디오 세계에 편의성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 매킨토시 레버러토리

1960년 우드스톡 페스티벌Woodstock Munte & Art Far은

그 시대의 음악적 천재성을 상징했다.

우드스톡의 음악과 아티스트들을 둘러싼 수많은 토론이 있었지만

정작 콘서트의 사운드에 대해선 언급된 바 없다.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ix와 재니스 조플린의 폭발적인 연주를

수천만 명의 관객에게 쏟아 낼 수 있는 강력한 앰프로 선택된 것은

뉴욕 빙엄턴의 하이엔드 오디오 전문 기업이었다.

매킨토시 래버러토리McIntosh Laboratory(이하 매킨토시)는

하이파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기업이다.

1949년 출범한 매킨토시는 매각과 소유권 이전 등을 겪으며 지난한 세월을 보냈으나,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장인 정신, 일관된 미감, 탁월한 사운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클레망 아데르, 토머스 에디슨, 사울 마란츠 그리고 좀처럼 쉬지 못하는 오디오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창업자 프랭크 매킨토시Frank McIntosh는

당시 오디오 생산에 불만을 가졌고 이를 자신이 개선하리라 확신했다.

오디오에 대한 혁신, 더 정확하게는 높은 구동력과 낮은 왜곡을 지닌 앰프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으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최고의 인재를 고용했다.

그들이 바로 고든 고Gordion Gow. 앤서니 코더먼Anthony Corderman으로

이들은 40여 년간 매킨토시의 비전, 제품 연구, 개발에 기여했다.

낮은 왜곡과 고출력의 개념은 '통합 연결 회로Unity Coupled Circuit'로

일찌감치 구현되었으며 오랫동안 매킨토시의 DNA가 되었다.

회로 외에도 녹색으로 빛나는 로고, 푸른빛의 레벨 미터,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된 유리 패널은 매킨토시 디자인의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60년대 매킨토시 앰프는 아직 노출된 진공관뿐이었다.

1960년대 후반 매킨토시는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 디자인에서 모험적인 시도를 감행했고

이 유산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1967년 매킨토시는 자사 최초의 술리드 스테이트 파워앰프 MC2505를 선보이며

매킨토시 디자인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 클립쉬

많은 스피커 제조사들이 오디오 기술의 혁신에 기여했지만,

하나의 모델을 70년 동안 생산한 것은 오직 한 기업뿐이다.

폴 W. 클립쉬[Paul W. Klipsch가 미국 아칸소에 세운 클립쉬가 그 주인공이다.

여느 오디오 명가들이 초기 히트작과 전혀 다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고려해 볼 때

클립쉬의 행보는 놀랍다.

클립쉬혼Klipschorn 스피커는 동시대에 출시된 보스의 제품과 결을 달리한다.

클립쉬는 혼 스피커 일인자이자,

혼 스피커만이 최고의 음을 얻을 수 있다는 창업자의 믿음을 고수했다.

클립쉬의 스피커는 초기 극장 혼 스피커만큼 크지 않고

동시대의 스피커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를 유지했다.

중음과 고음은 컴프레션 드 라이버에 매칭된 두 개의 혼 렌즈horn lense•를 사용하고

저음은 15인치 우퍼를 사용했다.

제품의 후면은 오픈되어 스피커의 높은 저음 응답성을 얻기 위해

방구석을 이용하도록 설계했으며 저출력의 삼극관으로도 충분히 울릴 수 있었다.

클립쉬 혼은 하이엔드 혼, 삼극관 앰프가 다시 유행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으며

혼 스피커와 저출력 진공관 앰프를 사랑하는 아시아 애호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폴 W. 클립쉬는 혼의 탁월한 다이내믹 레인지, 저왜곡, 주파수 응답에 대한 확고한 비전으로

괴짜라는 명성을 더해 갔다.

저능률 스피커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자 클립쉬는 이에 '헛소리Bullsh*t'라 일갈했다.

그는 오디오 업계에서 이단아 로 취급됐지만,

스스로는 이런 반응이나 행동 양식을 돌파구'라고 주장했다.

폴 클립쉬의 기이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이 70년 동안 브랜드의 고집을 유지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클립쉬를 '혼의 감독관'이라 부르는 이유다.

# 탄노이

혼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스피커 제조사들은

트위터 뒤에 미드/베이스 드라이버 가 결합되어 있는 동축 드라이버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은 매끄럽고 응집력 있는 사운드를 만들면서

분리된 주파수를 통합하고자 한 기술이었다.

1920년 대 영국에서 창업한 탄노이는 동축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자사의 트레이드 마크 듀얼 콘센트릭Dual Concentric을 만들었다.

대형 유닛 중 상당수는 강력한 알니코 마그넷alnico magnet*으로 제작되고

이들은 혼의 컴프레션 드라이버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감도를 자랑한다.

1960년대 오디오 대격변 시대에 탄노이는 자신의 이론을 고수했고,

지금도 빈티지 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며 듀얼 콘센트릭 드라이버를 생산 중이다.

# JBL

현대의 JBL은 스튜디오 모니터 혹은 공연장 스피커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950~1960년대 대표작들은 지금과 달랐다.

이 제품들은 빈티지 하이엔 드 오디오 시장에서 JBL을 정상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럭셔리 오디오라는 틈새 시장을 창조한 JBL은

하츠필드Hartsiald, 파라곤Paragon, 메트로곤Metregon 스피커를 통해

숙련된 가구 디자인에 필적하는 탁월한 사운드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1970년 JBL 회장이 된 아널드 울프Arold Wol가 리처드 레인저Richard Ranger의 설계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파라곤은 당시 가장 비싸고 럭셔리한 스피커였다.

1958년 당시 가격은 1,830달러. 1960년대 JBL은 이 스피커를 완성하는데 1

12시간의 수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파라곤은 오크, 월넛, 마호가니, 버치, 티크, 로즈우드, 흑단

또는 앤티크 화이트 피니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파라곤을 생산한 25년 동안 JBL은 이 제품을 위한 전용 생산 라인을 유지했다.

오디오 디자인에 민감한 소비자의 취향(그리고 지갑)을 사로잡아 온 파라곤은

오늘날 전 세계 오디오 전문가들에게 가장 수집하고 싶은 오디오'로 꼽힌다.

심지어 예술계도 홀렸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2011~2012년에 열린

전시 <캘리포니아 디자인, 1930~1965 현대식 생활Living in a Modern Way〉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파라곤이었다.

당시 스피커 기술은 소리의 분산과 방향성에 집중했다.

특히 스테레오의 등 장으로 무엇보다 스피커의 정중앙에 앉지 않는

감상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에 보스, 클립쉬 등 스피커 제조사가 동참했다.

레인저는 방 안 어디서나 일관된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굴절 시스템refractory system'을 도입해 최적의 확산을 완성했다.

이는 감상자의 위치와 관계없이, 인클로저의 곡면에서 반사된

유닛의 음이 하나의 거대한 사운드 스테이지를 이루는 기술이다.

1960년대 오디오는 우주 시대 판타지, 싱글맨 마케팅, 반도체,

저렴한 수입오 디오, 평범한 상업적 시도,

JBL 파라곤으로 시작한 하이엔드 예술품이 만나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는 10년 후 진정한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 문화로 만개한다.

.

.

제3장 하이엔드 오디오의 탄생

# 테이프의 음

1970년대를 하이엔드 릴투릴과 카세트 데크의 천국으로 규정하는 것이

전적으 로 틀리다고만은 할 수 없다.

LP와 함께 녹음된 카세트는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좋은 음질까지 들려줬다.

특히 카세트 공테이프는 LP, FM라디오 녹음에 이상적 이었다.

릴투릴 테이프 레코더는 우수한 마그네틱테이프 재생 기기였지만

큰 크기 때문에 수요는 한정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콤팩트한 카세트 데크는 보다 유연하고 사용하기 쉬웠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카세트 데크를

자동차의 표준 기기로 제공하기 시작하면서(덩치가 큰 8트랙 포맷을 대체했다)

포터블 테이프 플레이어가 시장에 등장, 다기능 카세트 플레이어가 인기를 끌었다.

반면 카세트의 하이엔드 오디오 진출은 부진했다.

1962년 필립스Philips가 콤팩트 오디오 카세트를 발명했지만

이 기술은 어드벤트Advent 201 카세트 데크가 출시되는 1971년까지

하이엔드 오디오 제조 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1은 돌비 노이즈 리덕션 기술을 장착하고 우수한 이 산화크롬 테이프까지 지원했다.

201 발매와 함께 하이엔드 오디오 세계는 카세트의 위상을

하이엔드 영역으로 끌어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세트 데크는 매우 복잡하고 작은 부품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오디오 애호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 카세트는 애호가를 아마추어 녹음 기사로 변신하게 해주는 즐거움도 제공 했다.

한편 카세트의 휴대성은 점차 상업적인 영역으로의 진입을 모색하고 있었다.

1970년대 수많은 고품질 카세트 데크가 존재했지만

변함없이 완벽을 추구 하는 브랜드 두 개가 하이엔드 시장을 지배했다.

바로 일본의 나카미치, 노르웨이 의 탠드버그다.

릴투릴 기기에서는 스위스의 스튜더-레복스가 일인자를 고수했다.

# 마크 레빈슨

마크 레빈슨

나카미치, 탠드버그, 레복스의 탁월한 테이프 플레이어가 아날로그 환경을 구축하 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프리앰프와 파워앰프가 궁극의 오디오 시스템을 향 해 나아가고 있었다.

1970년대 초반, 열정적인 젊은이였던 마크 레빈슨은 하이 엔드 오디오를 체현한 인물이다.

그는 1972년 코네티컷에서 회사를 세우고 존 컬 John curl과 토머스 콜랜젤로Thomas Colangalo라는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를 영입 했다.

이들의 협업은 '궁극의 오디오가 어떤 디자인, 어떤 음을 갖춰야 하는지 역설하며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오디오 기기들을 쏟아 냈다.

사울 마란츠에게 영감 을 받은 마크 레빈슨은 최상위 하이엔드 오디오 기술만을 엄선했다.

마크 레빈슨은 프리앰프와 파워앰프에서

자신의 브랜드 철학을 상징하는 특정 원칙을 고수했다.

바로 클래식 A 회로다.

앰프에서 클래스 A 작동은 회로 내 에 연결된 요소가 없는

파워 서플라이(전원 공급 장치)로부터 입력된 신호의 100 퍼센트를 사용한다.

항상 회로가 전도하기 때문에 순도 높은 음을 얻어 낼 수 있는 반면,

파워 서플라이에서 큰 전력을 소모하므로 회로에서

발생한 높은 열이 부품의 마모를 가속화한다는 단점이 있다.

클래스 AB 또는 클래스 B 회로는 회 로 내에 연결된 장치가 필요하므로 장비를 추가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더 효율 적이다.

클래스 A 앰프가 여러 이유로 이상적인 것은 맞지만

오디오 애호가 사이 에서 클래스 AB, B 회로는 클래스 A를 능가하진 못해도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마크 레빈슨의 첫 앰프 ML-2는 클래스 A 회로를 채용했고

채널당 8옴 시 25와트의 저출력을 제공했음에도 쿼드 57과 같이 불안정한 임피던스를 가진

스피커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높은 전력과 전압을 제공했다.

마크 레빈슨은 쿼드의 정전형 스피커 두 쌍을 장착한

그의 거대한 HOD 스피커에 이 앰프를 사 용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마크 레빈슨은 더 이상 마크 레빈슨 소속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가 자신의 오디오 사상을 실현해 줄

하이엔드 오디오 벤처 기업인 첼로와 필름 시스템Celo and Flim Systems을 창업했다.

그가 떠난 후에도 마 크레빈슨은 창업자의 유산을 지속시키며 정상의 오디오 기기를 소개했다.

# KEF

린이 아이소배릭 스피커를 설계할 때 대부분의 유닛을

KEFKent Engineoring & Foundry 제품으로 사용했다.

KEF는 당시 스피커 첨단 기술 연구, 개발 분야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KEF는 1962년 BBC 디자인 엔지니어 출신인 레이먼드 쿠크Raymond Cooke와

공장 소유주의 아들 로버트 퍼치Robert Pearch가 설립했다.

1960~1970년대에 쿠크는 이전 경력을 살려 방송용 모니터 스피커를 제작했는데,

이때 BBC가 설계하고 KEF가 생산하는 방식으로 양사의 협력 관계를 이끌어 냈다.

이들의 첫 번째 제품은 LS/1A였고, 1974년에는 LS3/5A로 진화한다.

좁은 BBC 원격 중계 트럭 내 설치를 위해 제작된 이 스피커는

하이엔드 수준까지 는 이르지 못했지만 대단히 실용적이었다.

작고 소박했던 이 모니터 스피커는 예상을 뛰어넘어 5만 세트가 넘게 판매 되었고,

이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쏟아져 나왔다.

BBC가 권리를 소유했기 때문 에 이 스피커는

수많은 오디오 회사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생산되었다.

제조 사들은 수년간 클래식한 디자인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무수히 많은 LS3/5A를 출시했다.

그중 KEF가 가장 먼저 LS3/5A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완성했다.

이 온순한 스피커가 오디오 세계를 평정한 비결은 LS3/5의 독특한 미드레 인지 퀄리티에 있다. 누군가는 이를 어두운 음색'이라 폄하했지만,

비선형성이나 이상한 임피던스 커브와 같은 결점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인 음악 성이 있었다.

KEF는 1970년대에 코렐리Corall, 칼린다Calinda, 칸타타Cantala와 같이

탁월한 스피커를 선보였기 때문에 KEF의 유산을 BBC LS3/5A로만 제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이들 제품 모두 LS3/5A와 같은 콤팩트한 사이즈에 높은 음악성, 음질을 들려주었다.

모두 명기로 불릴 만했다.

# B&W

1970년대에 진보한 스피커 디자인을 선보인 또 다른 영국 출신 제조사는

바워스 앤드 윌킨스Bowers & vwing(이하 B&W>다.

처음 시장에 진출하면서 지독한 어려 움을 겪어야 했던 B&W는

이때의 끈기를 동력으로 지금껏 하이엔드 오디오 신을버텨 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육군 왕립 통신대에서 만난 존 바워스John Bowers 와

로이 윌킨스(Roy Wikins는 1960년대 영국 남부 해안 도시 워딩에서

라디오, 전자 기기 상점을 공동 창업한다.

초기 비즈니스는 주로 학교와 교회의 PA 시스템 등 다양한 스피커를 수제 조립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 바워스는 매장 뒷마 당에서 자신의 스피커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데

집중했으며 실력을 점점 다듬어 나갔다.

당시 고객 중 바워스의 클래식 음악 지식과 스피커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나이트 여사Miss Knight는 훗날 그가 스피커 제조사를 창업하는 데 쓸 수 있도록

1 만 파운드를 유산으로 남겼다.

바워스는 그녀의 유지를 받들어 1966년 매장을 정리하고,

B&W 라우드스피커즈B&W Loudspeakers Ltd.를 설립했다.

초기 B&W는 스피커 유닛을 위탁 제조했다.

소비자의 호평과 함께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유통 체계를 확립했다.

1970년대 초 바워스는 독자 유닛을 만드는 데 전념했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전 EMI 기술 매니저 데니스 워드Dennis Ward를 고용했다.

이러한 투자는 결국 명기 DM70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DM70은 중역 와 고역에 11 세그먼트 곡면 정전 드라이버, 저역에 12인치 우퍼를 장착했다.

DM70의 탁월한 품질은 업계 최고 권위의 영국 산업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공인받았다.

DM70은 하이엔드 스피커와 산업 디자인의 끈끈한 유대를 확립한 제품이다.

위대한 디자인은 종종 평범한 기술을 가리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하지만 DM70의 디자인은 B&W의 청사진이자,

하이엔드 오디오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을 제시하고 있었다.

1970년대 초중반에 B&W는 당시 스피커에서 널리 쓰인 페이퍼콘의 대인을 연구했고,

방탄조끼의 소재인 케블라(Kowar에 집중한다.

스피커에 케플라를 적 용할 때 정제파sanding wavo가 효과적으로 제거돼

한층 더 선형적인 음이 발생한 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B&W는 1976년 DMG 스피커에 최초로 케블라 미드레인지 드라이버를 채용했다.

이 스피커는 펜타그램(Poragran의 영국 산업 디자이너

케네스 그레인지Kemoth Crunge가 디자인했다.

둘의 협업을 통해 DM70의 대표 적인 디자인이 탄생했고,

수십 년간 노란색 케플라 드라이버는 B&W 스피커 디지인의 시그니처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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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오디오 르네상스

# 리본과 솔리드 스테이트

이 시기 스피커 기술의 또 다른 혁신은 리본 유닛이었다.

리본 유닛은 1970년대 에 탄생했고 1980년대부터 관련 제품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기반의 브 랜드인 아포지 어쿠스틱스Apogee Acoustics는

리본 스피커를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에는 스피커와 동시에 앰프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아포지의 스피커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엄청난 앰프의 구동력을 요구했으며

이는 곧 강력한 힘을 갖춘 차세대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의 등장을 야기했다.

대표적인 예가 크렐, 마크 레빈슨, 제프 롤런드 그리고 스레숄드다.

.

.

제5장 진공관의 귀환

1990년대는 가장 매혹적인 오디오의 궁극을 목격하는 시대다.

디지털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LP의 쇠락을 불러왔다.

CD가 널리 보급되면서 결과적으로 테이프도 절멸했다.

디지털의 견조와 아날로그의 퇴조 현상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오디 오의 초기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가 나타났다.

진공관과 혼 스피커가 부활한 것 이다.

# 진공관의 부활

진공관은 사멸하지 않았다.

1980년대 오디오 제조사는 진공관 앰프, 프리앰프, CD 플레이어, DAC를 발매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진공관의 부활은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의 향상된 성능,

판매량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었다.

진공관의 부활은 단순히 과거의 현대적 해석에 머물지 않았다.

수년간 무심 하게 방치되어 있던 NOSNew old Stock 진공관•이 이국적이고 희귀한

싱글엔디 드 삼극관single-ended triode(SET) 앰프와 함께 수요가 높아져

사재기 현상이 발 생했다.

이 제품의 매력은 단순한 향수가 아닌 풍성한 사운드에 있었다.

각각의 진공관은 고유의 음을 가지고 있어 감상자를

드넓은 청각적 해석과 예술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이들 기기엔 한 가지 단점이 존재했으니, 바로 낮은 출력이다.

저출력 진공관을 향한 열기에 장애물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80년대 저능 를 스피커들이 시장을 지배했고 이들은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가 필요했다.

이들은 저출력 진공관과 어울리지 못했다.

진공관의 부활은 결국 새로운 혼 스피커 문화 탄생을 불러왔고

둘의 조합은 새로운 하이엔드 오디오의 전성기를 만들어 냈다.

# 혼 스피커

진공관 애호가의 진실성과 숭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콘도, 가버 같은 구도자들은

매우 현실적인 장애물에 직면했다.

그것은 채널당 10와트 이하의 앰프로도 적절한 볼륨을 재생할 수 있는

스피커를 찾는 일이었다.

통상적인 멀티 유닛 스피커 는 진공관 앰프의 낮은 감도와 능률 탓에 불가능했다.

풀 레인지와 코액셜 유닛은 효율은 뛰어났지만

대부분 빈티지 유닛이었기 때문에 DIY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높은 효율성을 지닌 혼 스피커가 부활해야만 했다.

존경을 받으며 낡아 가는 클립쉬혼 또는 JBL 혼에서 벗어나

1990년대에는 최상급 수준의 혼 스피커가 등장했다.

혼 스피커를 사랑하는 두 독일 제조사 아방 가르드 어쿠스틱Avantgarde Acoustic과

아카펠라 오디오 아츠Acapella Audio Arts 는 도발적이고 전례 없는 혼 스피커를 선보였다.

# 스피커의 진화

1980~1990년대 스피커 문화에서 다이내믹, 리본, 정전형, 혼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모니터 스피커 설계에도 하이엔드 스피커 기술이 사용됐다.

모니터 스피커는 주로 레코딩 스튜디오를 위해 제작한 액티브 스피커를 의미한다.

이들은 콤팩트한 대신 대부분 스탠드가 필요했다.

ADS, 앨리슨Alison, B&W, KEF, 프로악ProAc, 스피카Spica, 와피데일Whartedale 등

수없이 많은 브랜드의 모니터 스피커들이 출시됐고 탁월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윌슨 오디오Wison Audio, 포 웰 어쿠스틱스Pawel Acoustics,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 셀레스천Celestion 등

극도로 정교한 신세대 스피커의 등장에 물러났다.

# 윌슨 오디오

1980년대 중반 데이비드 윌슨David Wison은

해상도, 스피드, 정확성의 기준이 될 최신 기술의 모니터 스피커를 계획하고 있었다.

고비활성, 고밀도를 자랑하는 골드문트의 다이얼로그 스피커와 스타일이 유사한

윌슨 오디오의 인클로저는 미네랄로 채워진 메타크릴레이트 폴리머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략적으로 배치한 납판으로 튜닝과 댐핑을 더했다.

트위터는 포칼 120 특주 사양, 미드레인지는 시어스 Seas 제품을 쓰다

이후 스캔스픽Scanspeak으로 교체한다.

윌슨은 유닛을 개량하 여 스피커의 성능을 더욱 향상시켰다.

와트Wilson Audio Tiny Tot (이하 와트)라 명명된 그의 작품은

초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래 사랑받았다.

이후 10년간 윌슨은 와트의 저역 성능을 증가시키기 위해

스피커 아래에 놓 일 퍼피Puppy 우퍼 칼럼을 추가했다.

압도적인 저음을 뿜어내는 퍼피와 와트의 조합은

콤패트한 사이즈라곤 믿을 수 없는 가공할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퍼피 1 세대는 나무 기반의 MDF로 제작했지만

윌슨은 이후 와트와 같은 비활성 폴리 머로 교체했다.

10년간 와트와 퍼피 콤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했으며, 늘 호평받았다.

# B&O

스테레오 초기 시절에 언급했던 오디오계의 위대한 트렌드세터,

덴마크의 B80 를 다시 언급할 때다. 1990년대 오디오 산업에서 B&O의 위상은

오디오 산업의 미래를 암시한다.

산업 디자이너 야콥 옌센은 1964년부터 1991년까지 B&O에서 독보적인 자취를 남겼다.

그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했던 바우하우스 정신으로부터 형태는 느낌을 따른다'는,

궁극의 이상으로 진화했다.

그의 오디오 디자인은 감정 품 질'이라는 개념을 확산시켰다.

옌센이 B&O에 최종적으로 기여한 부분은

B&0 의 무르익은 기술과 노하우를 결합한 것이었다.

옌센의 기능주의 미니멀리즘 아래 후배 디자이너 데이비드 루이스,

듀오 디자이너 론 앤드 기디언 린딩거로위Lone and Gideon Lindinger-Loewy가 합세해

새로운 스피커들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이 패시브 스피커(베오복스Beovox)

레드 라인RL과 액티브 스피커(베오랩Beolab) 펜 타Penta다.

B&O가 오늘날의 '라이프 스타일 오디오' 개념을 소개했다는 (그리고 심지어 성공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디터 람스의 영감을 받은 브 라운과 함께 B&O는 하이엔드 디자인의 콘솔,

단품 기기, 스피커를 쏟아 낸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그러나 많은 오디오 애호가에게 '라이프 스타일'은 타협을 의미한다.

그들은 '음질 지상주의 미덕이 경시되고 디자인 중심 그리고 경멸받을 만한 마케팅으로 인해

결국 오디오 기업이 변질된다고 주장한다.

다음 챕터에서 보듯 애플의 아이팟, MP3의 도입 그리고 이들이 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논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시장은 접근성, 휴대성, 편의성에 중점을 두고 오디오에 대한 전통적 비전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의 변화도 하이엔드 오디오의 새로운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

.

제6장 새로운 아날로그 혁명

# 디지털과 스트리밍

아날로그가 하이엔드 오디오 환경에서 다시 자리 잡는 동안

디지털 기술 또한 음질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저음질의 MP3 시대가 저물고 개선된 음악 스트리밍과 고해상도 음원 다운로드 시장이 열렸다.

여전히 많은 사용자들은 헤드폰 으로 스트리밍하고

일부는 벽걸이, 천장에 장착된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디지털 의 발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엔드 오디오의 영역에서 음악 전송 기술의 발전을 고스란히 흡수해

한층 발전된 DAC와 스트리머streamer*가 등장했다.

# 골드문트

스위스 회사 골드문트는 창립 초기에 견지했던 낡은 방법론을 개선하고,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오랫동안 연구를 지속해 온 골드문트의 R&D팀은

끝내 오디오 애호가를 위한 하이엔드 무선 솔루션을 완성했다.

골드문트의 무선 기 술은 앰프와 디지털 프로세싱 모두를 내장한 스피커를 탄생시켰다.

이 스피커에 더 필요한 것은 음악 재생을 위한 컴퓨터뿐이다.

동사는 프로테우스, 레오나르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스피커 설계와 관련한

모든 변수를 처리할 수 있었다.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골드문트는 과거를 잊지 않았다.

새로운 무선 모 델은 1980년대 다이얼로그, 아폴로그, 에필로그Epilogue 스피커의

기계적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 과거의 모델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냈다.

1982년부터 골드문트는 턴테이블, CD 플레이어, 스피커의 기계적 에너지와

진동을 억제하기 위해 물리 학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착색을 줄여 보다 중립적인 재생이 가능해졌다.

한편 또 다른 인상적인 것은 이전 스피커에서 확립된 '입체파' 박스 구조와

그 심미성을 그대로 이어 간다는 사실이다.

이는 골드문트의 초기 스피커에서 확립된 것으로,

2010년대에 새로 소개된 아폴로그 애니버서리,

사마디Samadhl, 프라나 Prana 스피커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골드문트는 과거의 기술과 엔지니어링에 타협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무선 기술의 청사진을 선보였으며, 이 시대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l3CwRUlj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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